2009년 7월 8일 수요일

너는 편히 자고 있을까

 

  여자친구가 출장을 갔다. 출장이란 무어냐. 자고로 회사원의 꽃이 아니더냐. 지겨운 사무실을 벗어나 콧구녕에 바람도 좀 넣고 회삿돈으로 차비도 숙박비도 밥값도 오케이, 게다가 '나 출장 다녀왔어'라는 말이 주는, 뭔가 내가 회사에 중요한 인물일 것 같다는 딱히 근거는 없는 미묘한 만족감. 아무래도 출장 기회가 거의 없는 직종에 있기 때문에 더 그러겠지만, 인간 자체가 워낙 로망 지향형이라 이딴 것도 로망화해 버린다. 어쨌건 그동안 내게 출장은 전혀 부정적인 이미지가 아니었다.

  그런데 여자친구가 출장을 갔다 하니 이건 얘기가 백팔십도도 모자라서 김연아의 멋진 트리플 악셀 후에 반바퀴를 또 도는, 그러니까 얼마냐, 삼백육십 곱하기 삼에 백팔십을 더한 숫자만큼 달라지는 거라. 외로운 밤을 보내게 생겼다는 말을 하자는 건 아니고(원거리 연애지 말입니다), 암튼 별로 달갑지도 않은 일을 하러 장시간의 이동 후 낯선 도시의 여관방에서 홀로 잠드는 그녀 생각을 하니 가슴이 미어진다. 그녀는 사실 신났는데 나만 이렇게 사서 걱정하는 거라면 좋겠지만, 그녀도 지금 심기가 불편한 상태다. 이제야 깨달았다. 출장의 로망은 '남성'에게만 성립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가장 괴로운 것은 지금 이 상황에서 내가 그녀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이다.

 

  야근을 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지하철에서 문득 '사랑은 증명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은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전에 들었던 '그저 사랑하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은가 = 상대에게 사랑을 표현하고 증명하는 것이 그렇게 중요한가?' 하는 생각(뭐 별로 진지하게 고민한 건 아니다)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갔다고나 할까. 물리적 거리가 있는 상황에서 내가 그녀에게 사랑을 표현하고 증명하는 방법은 그리 다양하지 못하다. 아니, 우리에겐 '말'밖에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내가 처한 상황보다는 항상 너를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나는 언제나 너를 생각하고 있고 네 힘듦을 내 것으로 받아들여 함께 아파하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나는 그런 널 언제까지고 다독여 줄 사람이라는 것을 표현할 수 있는 길이 (그것도 전화 통화를 통한) '말'밖에 없다. 네이트온 기프티콘 같은 걸로 물질 공세를 펴는 것에도 한계가 있는 법이다! 그런데, 그녀가 말했듯 그녀가 이런 내 사랑을 잘 느낀다고 하더라도(즉, 내 증명이 성공했다고 하더라도) 오늘 같은 날은 너무 무력해지는 게 어쩔 수 없지 않은가. 하루 종일 널 쓰다듬고 안아 주었던 말들이 점점 '약빨'이 떨어져서임을 느껴서 였을까, 퇴근길의 마지막 통화에서는 할 말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널 사랑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그 사랑을 네가 느낄 수 있도록 온갖 수단을 다 써서 표현하고 전달한다고 하더라도 어쩔 수 없는 일들이, 오늘 같은 날을 보면 분명 있긴 있나 보다. 그래도 그것보다 더 어쩔 수 없는 일, 그것보다 더 분명하고 확실한 것은, 너를 향해 바짝 안테나를 세우고 있는 나.나는 네게 문자를 보냈다. "2009년 7월 8일 새벽 2시 37분부터 오전 8시까지, 나는 당신의 가장 편안한 팔베개-"

 

 

2009년 7월 1일 수요일

어떤 글의 첫머리


  생각해 보면 요 몇 년간 나를 감싸고 있는 것은 ‘과거에 대한 열등감’이었다. 바로 지금 이 순간이 아닌 모든 지난 시간이 전부 과거일진대 과연 언제를 기준으로 그 이전을 ‘과거’로 볼 것인가 하는 문제가 있긴 하지만, 어쨌건 내가 여기서 말하는 과거의 경계란 대체로 내가 ‘사회적 그물망’에 포섭되기 이전인 스물셋쯤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그 뒤의 시간들이라고 썩 마음에 들었다 ㅡ 열등감의 요소가 없었다 ㅡ 고 말할 수는 없지만, 그 시간들은 이전 시간들에 의해 어느 정도 규정된 것이었고(이를테면 ‘깔때기 효과’ 같은 것에 의해 선택의 폭이 제한될 수밖에 없었고), 나는 그 깔때기 속에 주어져 있는 ‘상수’(常數)들의 포위망 속에서도 어떻게든 내 삶에 충실한 선택을 하려고 아등바등 대기는 했다는, 약간의 자기위안이 섞여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과거에 대한 열등감’이란 무엇을 말하는가? 아, 그러고 보니 이건 적당한 표현이 아닌 것 같다. ...... 사실대로 말하자면 그냥 ‘존재로서의 열등감’이다. 그걸 ‘내가 그 시간들을 그렇게 안 보냈더라면 지금 이러고 있진 않을 텐데’ 하는 식으로 핑계를 대는 것이다. 하지만 뭐, 그게 중요한 건 아니다. 대학 때 미술 교양 과목 리포트에서 썼던 표현대로 “압살적 입시교육에 감수성을 말살당하고, 법칙을 중시하는 사회과학에 이성을 저당 잡힌 탓에” 나는 그게 내 자신이 되었든 타인이 되었든 세계가 되었든 무엇인가와 진실하게 대면하는 것이 곤혹스러웠다. 의지가 없는 건 분명 아닌데, 잘 안 되었다. 물론 순간순간의 감정들은 있었지만 내 삶으로 체화되지 않았다. “추상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란, 어떤 대상이건 필요하다면 언제든 그것을 기꺼이 자신의 일부로서 받아들이는 데 익숙한 사람이다”라는 말, “감수성은 ‘상처받을 수 있음’이다”라는 말. 내가 가장 가지고 싶은 모습들이다. 그 부재가 내 열등감의 원천이다. 나는 언제나 비평하고 조정하는 자였지, 행동하고 느끼는 자는 아니었다.

  나는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르다”라는 말보다는 “모든 일에는 때가 있다”라든가 “때가 되면 다 되게 마련” 같은 말들을 더 믿는 편이다. ‘바로 그때’ 느껴야 할 감정들을 ‘머리로’ ‘뒤늦게’ 가지려고 해봐야 그 감정이 그만큼 충실할 리 없지 않은가! 그리고 그것이 공평하다. 무엇인가가 자신을 찾아온 그 순간순간에 스스로에게 충실했던 사람들과 그것을 방관하고 밀어내기에 바빴던 내게 똑같은 선물이 주어져서야 쓰겠는가? 물론 노력을 하면 지금보다 아주 조금씩 나아지기야 하겠지만, 이미 감수성이라는 무기를 탄탄하게 갖춘 사람들을 따라가는 데에는 분명 한계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비단 유명한 예술가가 아니더라도 주변에서 감수성이 뛰어나고 또 그것을 ‘좋은’ 방식으로 사용하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 항상 기가 죽고 배가 아프다. 이제는 만성이 되었을 법도 한데, 문득문득 내 과거가 후회스러워 견딜 수 없을 때가 아직도 종종 있다.

  하지만 나는 기본적으로 낙관적인 사람이다. 콤플렉스에 휩싸이거나 혹은 어떤 다른 이유로 식음을 전폐한다거나 새벽까지 잠을 설치는 것은 영 체질에 맞지 않는다(아아, 하필이면 그런 모습을 동경한다는 데 나의 기묘한 악순환이 있다). 나는 나를 아껴 주고 보호해야 했다. 못하는 게 있으면 일찌감치 인정해 버리는 게 속 편했고, 그런 내 모습을 자조하면서 꽤 쏠쏠한 안줏거리로 삼았다. 그러면서도 나는 알고 있었다. 그러한 자조만으로는 참 몹쓸 인간이 되리라는 사실을. 그래서 나는 마치 세상이 졸라 안 바뀌는데도 사회운동을 그만둘 수 없는 활동가의 심정으로 나라는 놈을 계속 괴롭혔다. 너, 그거 맞냐? 너, 아예 생각 안 할래? 모르겠다. 구체적으로 뭘 어떻게 했는지는 설명하기가 곤혹스럽다. 아, 어쩌면 꽤나 메이저스러운 주변 환경 속에서도 다소 마이너틱한 직업을 선택했던 것 자체가 내겐 하나의 투쟁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분명 나는 나를 ‘그냥’ 두지는 않았다. 나를 오래 봐 온 사람 중 혹시라도 나를 좋아해 주는 사람이 있다면 아마도 이런 이유에서였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자신들은 포기해 버린 부분을, 그 안 되는 부분을, 어떻게든 해보려고 바득바득거리는 가련한 중생을 보면서 받는 어떤 위안 혹은 응원을 보내고 싶은 마음? 어쨌건 그 ‘콤플렉스’에 맞서 나를 살게 한 것은 이런 최소한의 자아존중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