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6월 24일 수요일

혼자 남겨져 수습한다는 것


  시인 장석남, 권대웅, 이홍섭 이런 선배들과 만나거나 소설가 김연수를 만나는 일은 아주 흥이 났다. 그들은 책을 손에 쥐고 다니며 어디서든 책을 펼쳐 읽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이 내어놓는 말솜씨에서도 나는 문장의 향기를 맡았다. 그러면서도 나는 혼자 남겨지는 것을 좋아했다. 네 평 자취방에서 작은 전기밥솥에 쌀을 안치고 밥이 익는 동안 시를 읽었다. 설거지를 끝내고 그 밥상에 앉아 시를 썼다. 여전히 합평회에서는 많은 비난을 받았지만 크게 흔들리지 않고 나의 생각을 수습해 시를 써나갔다. 쓰면 쓸수록 파지가 줄어들었다. 잔병 없이 크는 아이가 없듯이 여러 곤란 후에 나의 문장이 다듬어지기 시작했다. 한가함 없이 잠을 줄여가며 썼다.

  횔덜린이라는 독일 시인이 있다. 그는 34세부터 73세까지 정신착란 증세를 앓았다. 아무도 그를 돌보지 않았는데 같은 마을에 살던 침머라는 목수가 그를 보살폈다. 독일 튀빙엔 침머의 옥탑방에서 그는 40여 년을 유폐되어 살았다. 정신이 잠깐 들어오는 사이에 그는 시를 썼다. 침머가 일을 나간 후에 횔덜린은 혼자 남겨졌고 정신이 멀쩡해지는 틈을 타 그는 시를 썼다. 요즘 나는 그의 시를 다시 읽는다. 이런 구절이 있다. “위안받아라. / 이 삶은 고통받을 가치가 있도다.” 아도르노도 횔덜린의 시를 격찬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횔덜린은 혼자 남겨져 혼자 자신의 생각을 수습했던 시인이다. 그는 오직 그 일에만 골몰했다. 유일한 시인이었다. 골몰할 때 뭔가가 온다. 시가 오든지 큰 사상이 오든지. 그 골몰이 귀하다. 시는 순간적으로 천둥처럼 오는 경우도 있지만 그보다 더 많은 경우, 시는 오래 혼자 남겨진 사람에게 온다. 적어도 요즘 내 생각은 그렇다. 떼로 몰려다니며 안색을 자주 바꿀 일이 아니다. 혼자 남겨져 수습하는 것이 오직 실되고 참되다.

- 문태준, 「혼자 남겨져 수습한다는 것」, 풋 창간호, 2006년 여름

 

 

   매주 월요일 회의 시간, 회의 자료 맨 끝엔 직원들이 번갈아가며 골라온 그 주의 문장이 붙는다. 김종철 선생님과 장 자크 루소에 이어 이번주에는 문태준 시인의 글이 올랐다. 무언가 어떻든 '함께' '발전적인' 것을 추구하는, 어떻게 보면 굉장히 특이한 회사 사람들의 분위기 속에선 이런 류의 감상적인(이게 꼭 감상적인 것으로 볼 것만도 아니다만) 문장이 열렬히 환영받는 눈치는 아니었지만, 내게는 짠한 맛이 있었다.

 

  나는 사람들 속에 있고 싶어 한다. 누가 뭐래도 외로우니까. 그런데 그 안에서 잠시 외로움을 잊을 순 있지만 '나를 채워가는 만남'이라고 해야 할까, 그러니까 굳이 사람들 속에 비굴하게 비비적거리고 들어가지 않아도 단단히 구축된 자기의 세계에서 어깨를 펴고 서 있을 수 있는 그런 존재로 나를 이끄는 만남. 그런 건 거의 없었다. 남 탓할 것 없다. 그저 편한 사람들만 만나고자 했던 내 편협함이다. 부담스러운 것이 싫어 마치 오바 요조처럼 익살만 피워댔던 내 부끄러움이다. 어쨌건 나는 그러면서도 끊임없이 홀로 되기를 꿈꾸었다. 절대 고독을 추구해서가 아니라 나를 만들어가는, 위의 표현을 빌리자면 '수습하는' 시간이 필요했다. 그런데, 그런데, 막상 혼자가 되어도 조용히 나를 응시하면서 실되고 참되게 나를 수습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그 침묵과 막막함이 불편해서 끊임없이 행동의 이유를 만들어내며 나를 쪼았다. 그 시간 동안 껍데기가 조금은 자랐을지도 모르겠지만, 웅숭깊어질 수는 없었다. 그 사실을 깨닫게 된 어느 순간, 나는 좀, 많이, 슬펐다.

 

 

2009년 6월 8일 월요일

또 다른 중금속을 기다리며

 

  저녁 아홉 시 반. 고속터미널로 향하는 지하철 안은 한산했다. 책을 폈지만 야근까지 하며 혹사당한 눈이 괴로워하는 바람에 다섯 정거장도 채 가지 못해 덮어버렸다. 엠피쓰리를 꺼냈지만 하루 종일 가방 속에 누워 편히 잠만 자다 보니 힘이 부쳤던지 다섯 정거장도 채 가지 못해 배터리가 나가버렸다. 나는 맞은편 좌석에 조로록 앉은 7인의 인물지를 구성하기 시작했다.

  일곱 명 중 남자가 둘, 여자가 다섯이었고, 액면상 20대가 하나, 30대가 셋, 40대가 하나, 50대가 둘이었다. 책을 보는 사람이 둘, 신문을 보는 사람이 하나, 음악을 듣는 사람이 하나, 전화통화를 하는 사람이 둘, 나처럼 앞자리를 훑어보는 사람이 하나였다. 그러다가 내가 도대체 이 짓을 왜 하고 있나 싶어 피식거렸다. 김승옥의 「서울, 1964년 겨울」에 나오는 것처럼 "형씨, 2008년 6월 5일 밤 10시 13분에 서울 지하철 3266열차 4호차 좌측열 세 번째 칸에는 '캄보디아 정부 최초 1기 신도시 개발. 앙코르와트 관광복합신도시 상업용지 지급'이라는 존나게 끔찍하고 어이없는 광고문구가 실린 신문을 펼쳐 든, 옥색 넥타이를 한 40대 남성 회사원이 타고 있었다는 사실을 아시오?"라고 하기라도 하려고? 순간 나처럼 앞자리를 훑어보던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나는 혓바닥으로 입술을 핥으며, 언젠가 길에서 마주치면 그 남자의 얼굴을 알아볼 수 있을까, 잠시 생각했다. 어쨌든,

  그녀가 오고 있다. 지금 그녀가 나를 향해 오고 있다. 지하철에서 마주치는 수많은 인간들과는 달리 내 삶에 반짝반짝 빛나는 그녀가 나를 향해 오고 있는 것이다. 항상 애틋하게 느껴지는 우리 사이의 물리적 거리가 가장 절절하게 느껴지는 때는 바로 이때다. 그녀의 도시도 아니고 중간 지점도 아닌, 내가 사는 이곳으로 그녀가 오고 있을 때. 이때 그녀는 우리 사이의 거리를 줄이기 위한 투쟁을, 홀로, 묵묵히, 차근차근 해내고 있는 것이다. 거리를 지우는 데에는 돈도 시간도 필요하지만, 이러한 자원은 처음에 투여하기만 하면 그 뒤로는 저절로 굴러가는 반면 '몸'은 끊임없이 소모된다. 다섯 시간의 버스 이동은 결코 쉽다고는 할 수 없는 일인 것이다. 그녀가 몸으로 각인하고 있을 그 시간들을 조용히 어루만져주며, 고속도로 사이의 어느 지점에 별처럼 박혀 있을 그녀를 생각한다. 맹렬한 속도로 이곳을 향해 날아들고 있는 아름다운 별을.

 

  그녀의 버스가 도착할 시간보다 30분 정도 빨리 고속터미널에 도착했다. 기차가 아닌 버스를 기다릴 때에는 언제 도착할지 정확히 예측할 수 없다는 스릴이 있다. 새 버스가 들어오면 벌떡 일어나 앞 유리창의 시간과 출발지를 확인하고 '에, 아니네' 하면서 다시 벤치에 주저앉기를 수차례. 어디까지 왔는지, 잘 오고 있는지 궁금했지만 부러 전화를 하거나 문자를 보내지는 않았다. 농축시키고 압축시킨 그리움이, 그녀와 내가 마주서는 순간 폭발하도록 말이다.

  벤치 옆 자리에 앉은 사내는 연신 담배를 태웠고, 반대편의 아가씨는 PDA로 고스톱에 열중했다. 박스를 옆에 둔 아줌마 한 분은 전화를 걸어 엉뚱한 곳에 가 있는 딸에게 신경질을 냈다. 까까머리 중학생 넷이 전주에서 도착하는 버스를 보고 "저기닷!" 하며 손을 흔들며 환호했다. 지난 겨울방학 때 놀러갔다가 만난 시골 친구라도 오는 모양인지 어깨동무를 하며 짐을 서로 들어주겠다고 난리다. 요즘 참 보기 힘든 광경이지 싶어 괜스레 흐뭇해진다.

  논산에서 광주에서 군산에서 보령에서 춘천에서 고창에서 순창에서 꾸역꾸역 몰려들어 사람들을 한가득씩 뱉어내고 사라져가는 버스들. 곳곳에서 이 나라의 수도를 향해 금요일밤을 질주하는 이들이 이렇게나 많다는 사실에 새삼 놀란다. 나는 내 앞에서 서성거리던 한 아가씨의 존재를 의식했다. 그녀도 나만큼이나 충실하게 버스 입장 - 기립 - 버스 확인 - 착석의 프로세스를 반복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뒤로도 세 대쯤을 함꼐 허탕 치자 묘한 동질감이 솟아났다. 그녀와 눈이 잠깐 마주쳤지만, 어색하게 시선을 돌리며 그저 각자가 애타게 기다리고 있을 상대의 무사한 도착을 빌어주었다.

  어쨌거나 반복되는 허탕에 슬슬 조바심이 나기 시작한다. 그녀가 몸으로 줄여온 우리 사이의 거리가 한시라도 빨리 0mm로 수렴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목이 바짝바짝 마른다. 자판기에서 쿠우를 뽑아 먹는 초등학생에게 한 모금만 구걸하고 싶다는 생각까지 들었지만 어른의 품위를 지키기로 했다. 오랜만의 키스를 위해 아까부터 참고 있던 담배가 자꾸 땡긴다. 아랫입술을 꾸욱 깨물고 코로 들숨과 날숨을 세 번쯤 반복했을 때, 버스 한 대가 매끄럽게 포물선을 그리며 하차 홈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버스 앞 유리창에 적혀 있는 그녀의 출발지와 출발 시간.

  입으로 파아, 숨을 내뱉으며 두근두근 버스 앞문으로 향한다. 문이 열리고 사람들이 줄 지어 땅을 밟는다. 나는 두 발을 어꺠 넓이로 벌리고, 고생한 그녀에게 선사할 따뜻한 눈빛과 포옹을 준비한다. 아니, 그런 준비는 부러 하는 게 아니라 저절로 되는 거라고 말해야겠지. 그녀가 계단 앞에 한 발짝을 내딛고 고개를 들었다. 나는 가만히 손을 내밀었다. 그녀 눈 속에 담긴 그리움과 안타까움의 빛이 안도를 거쳐 사랑의 빛으로 변하는 모습을 바라본다. 저 우주에서 내려다보면, 작지만 서로를 향해 빛을 뿜어왔던 두 개의 자그마한 점이 비로소 맞닿아, 지상에서 가장 밝은 빛을 내기 직전의 순간일 것이다. 이렇게 '긴' 거리를 줄이고 나서야 비로소, 그녀는 내 손을 살그머니 잡았다.

 

 

2009년 6월 3일 수요일

숨을 들이킨다

 

  "모니터를 가만히 보고 있을 때마다 당신이 떠올라요."

  이런 말을 듣고 기분이 좋아지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게다가 나는 단순하기로 따지면 월드챔피언급인 대한민국 수컷. 응당 할 말을 잊어줄 만하다. 고마운 마음, 동감하는 마음, 사랑스러운 마음이 모두 들지만, 이 모든 감정을 전화상으로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방법을 찾기란 상당히 어려운 일이다. "왜 하필 모니터일까"라고 물었던 것은, 정말로 그게 궁금하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잠시 시간을 벌고자 하는 의도였는지도 모른다. 그런 내게, 그녀는 선선히 말했다.

  "아무래도 우리가 모니터를 통해서, 글을 통해서 만났으니까."

  아, 정말 그렇다. 잠시 그 사실을 잊고 있었어. 역시 세세한 감정의 결을 포착해내고 표현하는 데 있어 남자가 여자를 이기기란 쉽지 않다. 우리가 처음 만나던 시절, 서로가 서로를 대상으로 알 듯 말 듯 써내려 간 포스팅에서 느꼈던 짜릿한 감정들이 다시 살아와서 가슴을 부풀렸다. 나는 숨을 한껏 들이켰다. 그녀가 쓰던 바탕체의 삐침들이 들어와 막힌 콧속을 간지럽혔다.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바람이 많이 불었다. 빨간불을 밝힌 차량용 신호등이 파르르 흔들리는 게 보일 정도였으니까. 나는 또 그녀 생각이 났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니, 도대체 연결이 되질 않아! 바람에 파르르 흔들리는 신호등과 먼 도시에서 직장 생활을 하고 있는 여자친구가 연결될 구석이 대체 어디 있다고? 그녀가 자가운전자라는 사실? 그녀가 바람 불면 날아갈 정도로 가녀린 몸매의 소유자라는 사실? 하지만 그땐 그게 너무 자연스러웠다. 나를 둘러싼 조그마한 풍경과 내 주변에서 일어나는 사소한 변화들 모두가 그녀를 떠올리게 한다. 나는 숨을 한껏 들이켰다. 비를 살짝 머금은 6월 밤의 공기가 느껴졌다. 다시 신호가 들어오고 나는 힘차게 페달을 밟았다.

 

  샤워를 하고 집 앞 슈퍼에서 맥주를 사오는 짧은 시간 동안 그녀는 잠이 들었다. 이런, 내가 못 산다니까. 나는 피식 웃으며 컴퓨터 앞에 앉아 그녀의 블로그로 접속한다. 새 곳에 둥지를 튼 지 얼마 되지 않아 오늘 새로 올린 글을 포함해도 몇 개밖에 없는 그녀의 블로그. 내친 김에 첫 번째 글부터 다시 차근차근 읽어간다. 그 단어와 단어 사이에, 문장과 문장 사이에, 문단과 문단 사이에 그녀가 숨을 쉬고 있었다. 예쁜 웃음도 뾰루퉁한 표정도 슬픈 눈빛도 모두 그 안에 있었다. 나는 숨을 한껏 들이켰다. 그 안에서 그녀와 그녀의 가면을 가려내고, 그녀의 호흡을 느끼고, 그녀의 표정을 복원해냈다. 그러다 보니 내 품에 안긴 그녀의 살냄새까지도 느껴졌다. 그래, 우린 모니터를 통해서, 글을 통해서 만난 사이지.

 

  포스팅 하나 하려면 진을 다 뺴는 스스로를 너무 잘 알고 있고, 들어간 지 한 달도 채 안 된 회사에 적응하는 일도 바쁘다. 사람들이 찾아와줄 일도 거의 없으며 블로깅 자체에 대한 흥미도 예전보다 많이 떨어진 게 사실이다. 그런데도 블로그를 어떻게든 다시 시작하고 싶었던 것은, 이런 우리의 관계를 좀 더 '독창적'으로 만들고 싶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게다가 우리에겐 '글'이라는, 이미 효과가 검증된 좋은 수단이 있지 않은가.

  운명처럼 서로에게 이끌려 시작했지만, 우리 역시 '개별적으로 특출난' 사람은 아니다. 최근에 나는 그녀의 섬세한 감정을 내 식으로 이해하다가 낭패를 본 적이 좀 있다. 내가 그것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을 하는 것과는 별개로, 나는 우리 관계가 이런 식으로 '평범'해지는 것은 원치 않는다. 그러고 보니 언젠가부터 '소울메이트'라는 단어를 믿지 않게 되었다. 그런데 그게 미묘한 변화를 겪었다. 전에는 단순한 회의론이었다면, 그녀를 만나고 나서는 그 단어가 '아무 노력도 안 해도 저절로 되는'이라는 판타지를 불러일으킬 위험이 있다고 생각해서다. 마치 홍수가 났는데 지붕 위에서 '나는 신이 구해주실 거야'라고 믿으며 구명보트도 거절했던, 그러다 죽어서 하느님을 만나 따졌더니 '인마 내가 구명보트 보냈는데 니가 안 탔잖아'라고 쿠사리를 먹었던 어리석은 기독교인의 이야기처럼.

 

  우리는 글을 읽고 씀으로써 우리의 관계를 더욱 '독창적'으로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서로의 주파수를 맞춰가며 서로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욕망과 꿈을 '색다른' 형식으로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김경욱의 소설에 보면) 롤랑 바르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독창성의 진짜 처소는 그 사람도 나 자신도 아닌, 바로 우리의 관계이다. 따라서 빛나는 사랑을 위해 당신이 쟁취해야 하는 것은 그, 혹은 그녀가 아니라 그, 혹은 그녀와의 독창적인 관계이다. 내가 그녀에게서 새로운 매력을 발견했다면 그 매력의 진원지는 그녀가 아니라 그녀와의 관계여야 마땅하다"라고. 물론 그녀 자체로도 충분히 매력적이지만, 나는 '그녀와의 관계'가 지금보다 훨씬 더 큰 매력을 발산하기를 바란다.

  자, 그럼, 숨을 들이쉬고, 출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