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장석남, 권대웅, 이홍섭 이런 선배들과 만나거나 소설가 김연수를 만나는 일은 아주 흥이 났다. 그들은 책을 손에 쥐고 다니며 어디서든 책을 펼쳐 읽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이 내어놓는 말솜씨에서도 나는 문장의 향기를 맡았다. 그러면서도 나는 혼자 남겨지는 것을 좋아했다. 네 평 자취방에서 작은 전기밥솥에 쌀을 안치고 밥이 익는 동안 시를 읽었다. 설거지를 끝내고 그 밥상에 앉아 시를 썼다. 여전히 합평회에서는 많은 비난을 받았지만 크게 흔들리지 않고 나의 생각을 수습해 시를 써나갔다. 쓰면 쓸수록 파지가 줄어들었다. 잔병 없이 크는 아이가 없듯이 여러 곤란 후에 나의 문장이 다듬어지기 시작했다. 한가함 없이 잠을 줄여가며 썼다.
횔덜린이라는 독일 시인이 있다. 그는 34세부터 73세까지 정신착란 증세를 앓았다. 아무도 그를 돌보지 않았는데 같은 마을에 살던 침머라는 목수가 그를 보살폈다. 독일 튀빙엔 침머의 옥탑방에서 그는 40여 년을 유폐되어 살았다. 정신이 잠깐 들어오는 사이에 그는 시를 썼다. 침머가 일을 나간 후에 횔덜린은 혼자 남겨졌고 정신이 멀쩡해지는 틈을 타 그는 시를 썼다. 요즘 나는 그의 시를 다시 읽는다. 이런 구절이 있다. “위안받아라. / 이 삶은 고통받을 가치가 있도다.” 아도르노도 횔덜린의 시를 격찬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횔덜린은 혼자 남겨져 혼자 자신의 생각을 수습했던 시인이다. 그는 오직 그 일에만 골몰했다. 유일한 시인이었다. 골몰할 때 뭔가가 온다. 시가 오든지 큰 사상이 오든지. 그 골몰이 귀하다. 시는 순간적으로 천둥처럼 오는 경우도 있지만 그보다 더 많은 경우, 시는 오래 혼자 남겨진 사람에게 온다. 적어도 요즘 내 생각은 그렇다. 떼로 몰려다니며 안색을 자주 바꿀 일이 아니다. 혼자 남겨져 수습하는 것이 오직 실되고 참되다.
- 문태준, 「혼자 남겨져 수습한다는 것」, 풋 창간호, 2006년 여름
매주 월요일 회의 시간, 회의 자료 맨 끝엔 직원들이 번갈아가며 골라온 그 주의 문장이 붙는다. 김종철 선생님과 장 자크 루소에 이어 이번주에는 문태준 시인의 글이 올랐다. 무언가 어떻든 '함께' '발전적인' 것을 추구하는, 어떻게 보면 굉장히 특이한 회사 사람들의 분위기 속에선 이런 류의 감상적인(이게 꼭 감상적인 것으로 볼 것만도 아니다만) 문장이 열렬히 환영받는 눈치는 아니었지만, 내게는 짠한 맛이 있었다.
나는 사람들 속에 있고 싶어 한다. 누가 뭐래도 외로우니까. 그런데 그 안에서 잠시 외로움을 잊을 순 있지만 '나를 채워가는 만남'이라고 해야 할까, 그러니까 굳이 사람들 속에 비굴하게 비비적거리고 들어가지 않아도 단단히 구축된 자기의 세계에서 어깨를 펴고 서 있을 수 있는 그런 존재로 나를 이끄는 만남. 그런 건 거의 없었다. 남 탓할 것 없다. 그저 편한 사람들만 만나고자 했던 내 편협함이다. 부담스러운 것이 싫어 마치 오바 요조처럼 익살만 피워댔던 내 부끄러움이다. 어쨌건 나는 그러면서도 끊임없이 홀로 되기를 꿈꾸었다. 절대 고독을 추구해서가 아니라 나를 만들어가는, 위의 표현을 빌리자면 '수습하는' 시간이 필요했다. 그런데, 그런데, 막상 혼자가 되어도 조용히 나를 응시하면서 실되고 참되게 나를 수습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그 침묵과 막막함이 불편해서 끊임없이 행동의 이유를 만들어내며 나를 쪼았다. 그 시간 동안 껍데기가 조금은 자랐을지도 모르겠지만, 웅숭깊어질 수는 없었다. 그 사실을 깨닫게 된 어느 순간, 나는 좀, 많이, 슬펐다.
와우, 근 한 달만인가요? 오랜만의 포스팅을 보니 반갑네요. 바쁘다고 튕기지 마시고 자주 뵙길 바랄게요. 포스팅으로! 역시 현대인에게 자신을 '수습'하는 행위는 블로깅이 '와따'잖아요? 키식 :)
답글삭제@수은 - 2009/06/25 00:56
답글삭제보름이라고 쓰셔도 될 걸 굳이 한 달로 과장해버리시는군요. 호들갑 수은님! 호홋- 조금 편하게 편하게 나를 수습할 수 있는 곳이 되길, 저도 바라고 있어요. 그러려면 독자 언후랜들리가 될 것이 명명백백해서 좀 슬프지만. 키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