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니터를 가만히 보고 있을 때마다 당신이 떠올라요."
이런 말을 듣고 기분이 좋아지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게다가 나는 단순하기로 따지면 월드챔피언급인 대한민국 수컷. 응당 할 말을 잊어줄 만하다. 고마운 마음, 동감하는 마음, 사랑스러운 마음이 모두 들지만, 이 모든 감정을 전화상으로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방법을 찾기란 상당히 어려운 일이다. "왜 하필 모니터일까"라고 물었던 것은, 정말로 그게 궁금하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잠시 시간을 벌고자 하는 의도였는지도 모른다. 그런 내게, 그녀는 선선히 말했다.
"아무래도 우리가 모니터를 통해서, 글을 통해서 만났으니까."
아, 정말 그렇다. 잠시 그 사실을 잊고 있었어. 역시 세세한 감정의 결을 포착해내고 표현하는 데 있어 남자가 여자를 이기기란 쉽지 않다. 우리가 처음 만나던 시절, 서로가 서로를 대상으로 알 듯 말 듯 써내려 간 포스팅에서 느꼈던 짜릿한 감정들이 다시 살아와서 가슴을 부풀렸다. 나는 숨을 한껏 들이켰다. 그녀가 쓰던 바탕체의 삐침들이 들어와 막힌 콧속을 간지럽혔다.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바람이 많이 불었다. 빨간불을 밝힌 차량용 신호등이 파르르 흔들리는 게 보일 정도였으니까. 나는 또 그녀 생각이 났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니, 도대체 연결이 되질 않아! 바람에 파르르 흔들리는 신호등과 먼 도시에서 직장 생활을 하고 있는 여자친구가 연결될 구석이 대체 어디 있다고? 그녀가 자가운전자라는 사실? 그녀가 바람 불면 날아갈 정도로 가녀린 몸매의 소유자라는 사실? 하지만 그땐 그게 너무 자연스러웠다. 나를 둘러싼 조그마한 풍경과 내 주변에서 일어나는 사소한 변화들 모두가 그녀를 떠올리게 한다. 나는 숨을 한껏 들이켰다. 비를 살짝 머금은 6월 밤의 공기가 느껴졌다. 다시 신호가 들어오고 나는 힘차게 페달을 밟았다.
샤워를 하고 집 앞 슈퍼에서 맥주를 사오는 짧은 시간 동안 그녀는 잠이 들었다. 이런, 내가 못 산다니까. 나는 피식 웃으며 컴퓨터 앞에 앉아 그녀의 블로그로 접속한다. 새 곳에 둥지를 튼 지 얼마 되지 않아 오늘 새로 올린 글을 포함해도 몇 개밖에 없는 그녀의 블로그. 내친 김에 첫 번째 글부터 다시 차근차근 읽어간다. 그 단어와 단어 사이에, 문장과 문장 사이에, 문단과 문단 사이에 그녀가 숨을 쉬고 있었다. 예쁜 웃음도 뾰루퉁한 표정도 슬픈 눈빛도 모두 그 안에 있었다. 나는 숨을 한껏 들이켰다. 그 안에서 그녀와 그녀의 가면을 가려내고, 그녀의 호흡을 느끼고, 그녀의 표정을 복원해냈다. 그러다 보니 내 품에 안긴 그녀의 살냄새까지도 느껴졌다. 그래, 우린 모니터를 통해서, 글을 통해서 만난 사이지.
포스팅 하나 하려면 진을 다 뺴는 스스로를 너무 잘 알고 있고, 들어간 지 한 달도 채 안 된 회사에 적응하는 일도 바쁘다. 사람들이 찾아와줄 일도 거의 없으며 블로깅 자체에 대한 흥미도 예전보다 많이 떨어진 게 사실이다. 그런데도 블로그를 어떻게든 다시 시작하고 싶었던 것은, 이런 우리의 관계를 좀 더 '독창적'으로 만들고 싶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게다가 우리에겐 '글'이라는, 이미 효과가 검증된 좋은 수단이 있지 않은가.
운명처럼 서로에게 이끌려 시작했지만, 우리 역시 '개별적으로 특출난' 사람은 아니다. 최근에 나는 그녀의 섬세한 감정을 내 식으로 이해하다가 낭패를 본 적이 좀 있다. 내가 그것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을 하는 것과는 별개로, 나는 우리 관계가 이런 식으로 '평범'해지는 것은 원치 않는다. 그러고 보니 언젠가부터 '소울메이트'라는 단어를 믿지 않게 되었다. 그런데 그게 미묘한 변화를 겪었다. 전에는 단순한 회의론이었다면, 그녀를 만나고 나서는 그 단어가 '아무 노력도 안 해도 저절로 되는'이라는 판타지를 불러일으킬 위험이 있다고 생각해서다. 마치 홍수가 났는데 지붕 위에서 '나는 신이 구해주실 거야'라고 믿으며 구명보트도 거절했던, 그러다 죽어서 하느님을 만나 따졌더니 '인마 내가 구명보트 보냈는데 니가 안 탔잖아'라고 쿠사리를 먹었던 어리석은 기독교인의 이야기처럼.
우리는 글을 읽고 씀으로써 우리의 관계를 더욱 '독창적'으로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서로의 주파수를 맞춰가며 서로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욕망과 꿈을 '색다른' 형식으로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김경욱의 소설에 보면) 롤랑 바르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독창성의 진짜 처소는 그 사람도 나 자신도 아닌, 바로 우리의 관계이다. 따라서 빛나는 사랑을 위해 당신이 쟁취해야 하는 것은 그, 혹은 그녀가 아니라 그, 혹은 그녀와의 독창적인 관계이다. 내가 그녀에게서 새로운 매력을 발견했다면 그 매력의 진원지는 그녀가 아니라 그녀와의 관계여야 마땅하다"라고. 물론 그녀 자체로도 충분히 매력적이지만, 나는 '그녀와의 관계'가 지금보다 훨씬 더 큰 매력을 발산하기를 바란다.
자, 그럼, 숨을 들이쉬고, 출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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